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석유가 매장된 나라. 이 문장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엄청난 부와 번영을 누리는 국가를 떠올리게 됩니다. 하지만 현실은 동화와 다릅니다. 바로 남미의 베네수엘라 이야기입니다. 한때 ‘남미의 부자 나라’로 불리며 풍요를 구가했던 이 국가는 어쩌다 경제가 파탄 나고 수백만 명의 국민이 나라를 등지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을까요? 이는 단순히 한 정권의 실책을 넘어, 풍부한 천연자원이 오히려 국가에 독이 되는 ‘자원의 저주(Resource Curse)’라는 경제학적 함정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오늘 우리는 석유라는 ‘검은 황금’이 어떻게 축복에서 비극의 씨앗으로 변했는지, 그 깊고 복잡한 내막을 파헤쳐 보고자 합니다.
‘자원의 저주’란 무엇인가: 모든 비극의 시작

베네수엘라는 확인된 원유 매장량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능가하는 세계 1위의 산유국입니다. 상식적으로 국민 모두가 높은 생활 수준을 유지해야 마땅하지만, 현실은 처참합니다.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으로 화폐는 휴지 조각이 되었고, 상점 진열대는 텅 비었으며, 기본적인 식료품과 의약품조차 구하기 힘든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 기이한 현상의 중심에는 ‘자원의 저주’ 또는 ‘네덜란드 병(Dutch Disease)’이라 불리는 경제 현상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는 특정 천연자원의 수출로 벌어들인 막대한 외화가 자국 통화 가치를 급격히 상승시키고, 이로 인해 제조업이나 농업 등 다른 산업의 수출 경쟁력을 약화시켜 결국 국가 경제 전체가 단일 자원에만 의존하게 되는 기형적인 구조를 만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석유 수출로 얻은 손쉬운 부가 다른 산업의 발전을 저해하고, 사회 전반에 부패와 비효율, 단기적인 이익에만 집착하는 문화를 만연시킨 것입니다.
포퓰리즘의 그늘: 차베스 시대의 빛과 그림자
베네수엘라의 비극은 2000년대 초반,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 시절에 그 뿌리가 깊어졌습니다. 당시 고유가 시대를 맞아 넘쳐나는 오일 달러를 기반으로 그는 강력한 카리스마와 함께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정책들을 펼쳤습니다.
달콤했지만 지속 불가능했던 복지 정책

차베스는 석유로 번 막대한 돈을 ‘미션(Misión)’이라 불리는 사회 프로그램을 통해 빈민층에게 아낌없이 분배했습니다. 무상 교육, 무상 의료, 저렴한 주택 공급 등 파격적인 복지 정책은 단기적으로 빈곤율을 낮추고 국민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이끌어냈습니다. 하지만 이는 국가의 미래를 위한 장기적인 투자가 아닌, 석유 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현금 살포식 정책에 불과했습니다. 산업 다각화나 인프라 개선 대신, 당장의 인기를 유지하기 위한 지출에만 집중하면서 베네수엘라 경제는 스스로 덫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국유화와 전문가의 이탈: 산업 기반의 붕괴

차베스 정부는 더 나아가 석유 산업을 포함한 주요 기간 산업을 국유화하고 외국 자본을 축출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국영 석유기업 PDVSA의 경영진과 숙련된 엔지니어들이 대거 해고되거나 해외로 떠났고, 그 자리는 전문성 없는 친정부 인사들로 채워졌습니다. 생산 시설에 대한 재투자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노후화된 장비와 비전문적인 운영으로 인해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던 원유 생산량은 점차 감소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석유라는 단 하나의 엔진마저 서서히 동력을 잃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위 표에서 볼 수 있듯, 특정 자원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외부 충격에 극도로 취약한 경제 구조를 만들며, 이는 곧 닥쳐올 재앙의 서막이었습니다.
끝없는 추락: 마두로 정권과 경제 파탄의 가속화

차베스의 뒤를 이은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시대에 이르러 베네수엘라 경제는 걷잡을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2014년 이후 국제 유가가 폭락하자, 석유 수입에만 의존하던 경제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렸습니다. 정부는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무분별하게 화폐를 발행했고, 이는 역사에 기록될 수준의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이어졌습니다. 여기에 마두로 정권의 독재와 인권 탄압에 대응한 미국의 강력한 경제 제재가 더해지면서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습니다.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고통 속에서 수백만 명의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생존을 위해 국경을 넘는 난민이 되었고, 남은 이들은 여전히 희망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베네수엘라의 비극이 우리에게 던지는 교훈
석유 부국 베네수엘라의 몰락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특정 산업, 특히 변동성이 큰 원자재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국가 경제를 얼마나 취약하게 만드는지, 그리고 포퓰리즘에 기반한 단기적 정책이 미래 세대에게 어떤 끔찍한 대가를 치르게 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또한, 건강한 경제 구조를 유지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투명하고 유능한 정부의 역할과 장기적인 안목을 가진 정책 설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합니다. 베네수엘라의 비극이 하루빨리 끝나기를 바라며, 우리 역시 대한민국의 경제 구조와 산업 정책에 대해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며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지혜를 모아야 할 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