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음주는 괜찮다? 과학이 밝혀낸 음주와 심장 건강의 불편한 진실

음주와 심장 건강의 관계를 나타내는 이미지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 깊숙이 자리 잡은 믿음이 있습니다. 바로 ‘하루 한두 잔의 술은 혈액순환을 도와 심장에 이롭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많은 애주가에게 일종의 면죄부처럼 여겨졌고, 건강을 염려하면서도 술잔을 완전히 놓지 못하게 하는 달콤한 유혹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발표된 수많은 연구 결과들은 이 오래된 신화에 정면으로 도전하며, 우리가 알고 있던 음주와 건강의 상식을 뿌리부터 뒤흔들고 있습니다. 특히 심장 건강에 대한 알코올의 영향은 더 이상 긍정적인 측면만으로 논할 수 없는 복잡하고 위험한 문제임이 명백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적당한 음주’라는 모호한 개념 뒤에 숨겨진 불편한 진실을 마주해야 할 때입니다.

오래된 믿음의 균열: ‘한두 잔은 약’이라는 신화

심장 건강과 음주 논쟁에 대한 그래프

음주와 심장 건강 논쟁에 불을 지핀 것은 몇 년 전 미국심장협회(AHA)가 권위 있는 학술지 ‘서큘레이션(Circulation)’에 발표한 내용이었습니다. 해당 발표는 하루 1~2잔 정도의 가벼운 음주가 관상동맥질환이나 뇌졸중 같은 특정 심혈관 질환의 위험을 높이지 않으며, 오히려 일부 연구에서는 위험도를 약간 낮추는 경향을 보였다고 정리했습니다.

이 소식은 ‘역시 술은 약이 될 수도 있구나!’라는 인식을 확산시키며 많은 사람을 안도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전체 그림의 극히 일부에 불과했습니다. 이 결론은 ‘J자 곡선 효과’라는 통계적 현상에 기반한 것인데, 여기에는 몇 가지 함정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연구 대상에 포함된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 그룹’에는 과거에 과도한 음주로 건강이 나빠져 술을 끊은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소량의 음주자들이 이들보다 상대적으로 더 건강해 보이는 착시 효과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연구는 알코올이 가진 수많은 다른 건강 위험, 특히 암 발생 가능성과 같은 치명적인 부작용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거센 비판에 직면했습니다. 심혈관 질환에 대한 불확실하고 제한적인 이점 하나만을 보고 알코올의 전반적인 위험성을 간과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접근 방식입니다.

반박할 수 없는 증거: 알코올, 1급 발암물질의 두 얼굴

알코올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

심장 건강에 대한 논쟁과는 별개로, 암 연구 분야에서 알코올의 유해성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사실입니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이미 오래전에 알코올을 ‘1군 발암물질’로 분류했습니다. 이는 담배, 석면, 가공육과 같이 인체에 대한 발암성이 명확하게 확인된 물질이라는 의미입니다.

알코올은 우리 몸에 들어와 아세트알데하이드라는 독성 물질로 분해되는데, 이 물질이 DNA를 손상시키고 세포의 정상적인 복제 과정을 방해하여 암세포를 만듭니다. 특히 구강암, 인두암, 후두암, 식도암, 간암, 대장암, 그리고 여성의 유방암 발생 위험을 직접적으로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조금 마시는 건 괜찮겠지’라고 생각하지만, 암에 관한 한 ‘안전한 음주량’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단 한 잔의 술이라도 암 발생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 현재까지의 과학적 결론입니다. 불확실한 심장 보호 효과를 위해 명백한 발암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결코 현명한 선택이 될 수 없습니다.

심장을 향한 직접적인 공격: 심방세동의 위험성

음주량에 따른 건강 위험도 표

최근에는 소량의 음주조차 심장에 직접적인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주목해야 할 질환은 ‘심방세동’입니다. 심방세동은 심장이 불규칙하고 빠르게 뛰는 부정맥의 일종으로, 심장 내부에 혈전(피떡)을 만들어 뇌졸중의 위험을 5배 이상 높이는 매우 위험한 질환입니다.

국내 한 대규모 연구에서는 매일 소주 한 잔 정도의 알코올(약 10g)을 섭취하는 것만으로도 심방세동 발생 위험이 유의미하게 증가한다는 충격적인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는 ‘적당한 음주’가 심장을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심장의 전기적 안정성을 해치고 치명적인 부정맥을 유발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결국, 일부 혈관을 이완시키는 효과가 있을지는 몰라도, 심장 근육 세포 자체에는 독성으로 작용하여 정상적인 리듬을 파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술이 혈액순환에 좋다’는 말이 얼마나 단편적이고 위험한 믿음인지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아시아인에게 더 치명적인 이유: 알코올 분해 효소의 비밀

건강한 생활 습관을 위한 결심

특히 한국인을 포함한 많은 아시아인은 유전적으로 알코올에 더 취약하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술을 조금만 마셔도 얼굴이 붉어지고 심장이 두근거리는 ‘아시안 플러시’ 현상을 경험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는 알코올의 1차 대사산물인 아세트알데하이드를 분해하는 효소(ALDH2)의 기능이 유전적으로 약하기 때문입니다.

아세트알데하이드는 강력한 독성을 지닌 발암물질입니다. 이 물질이 몸속에 제대로 분해되지 않고 오래 머물게 되면, 서양인에 비해 훨씬 적은 양의 술을 마셔도 더 큰 세포 손상과 염증 반응을 겪게 됩니다. 이는 식도암, 위암 등의 발생 위험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키는 원인이 됩니다.

따라서 얼굴이 쉽게 붉어지는 사람이 ‘술을 마시면 건강에 좋다’는 말을 믿고 억지로 술을 마시는 것은 말 그대로 독을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자신의 유전적 특성을 이해하고, 다른 사람보다 알코올의 위험에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들의 최종 권고

이 모든 혼란스러운 정보 속에서 우리가 내려야 할 결론은 명확합니다.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건강상의 이점을 위해 술을 마시기 시작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만약 이미 술을 마시는 습관이 있다면, 그 양과 빈도를 줄이는 것이 건강을 위한 최선의 선택입니다.

이제 ‘적당한 음주’라는 안일한 개념은 버려야 합니다. 대신 ‘저위험 음주’라는 개념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즉, 위험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건강을 위한 음주 가이드라인에서 남성은 하루 2잔 이하, 여성은 하루 1잔 이하로 섭취하고, 일주일에 최소 2일 이상은 술을 마시지 않는 ‘금주’일을 가질 것을 권고합니다.

오늘 저녁, 혹시 술 약속이 있으신가요? 나의 소중한 건강과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나의 음주 습관을 진지하게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한 잔의 술이 주는 찰나의 즐거움보다, 건강한 삶이 주는 장기적인 행복이 훨씬 더 값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때입니다.


  정부지원금